민간 CIO는 주주에게 보고하지만, 지자체 CIO는 주민의 평가를 받는다. 시민들은 신뢰할 수 있고 유용한 공공 서비스를 매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의 IT 성과는 분기 실적, 효율성 향상, 경쟁력 확보 등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지자체 CIO가 마주하는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이들이 상대해야 할 ‘고객’은 매일 시의 서비스에 영향을 받는 주민이다. 광대역 인터넷, 쓰레기 수거처럼 시민의 일상과 직결된 서비스는 언제나 원활해야 한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정당한 찬사를 받지만, 실패하면 즉각적이고 격렬한 비판에 직면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 호주 시드니, 미국 조지아주 샌디스프링스, 노르웨이 스타방에르의 기술 책임자는 지자체 CIO가 어떻게 혁신과 책임 사이 균형을 잡는지, 민간 CIO와 어떤 점에서 역할이 다른지를 설명했다. 이들의 경험은 민간 CIO에게도 유익한 교훈이 될 것이다.
가시성과 책임감
산타모니카의 CIO 페로즈 머치히야는 민간과 지자체 CIO의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머치히야는 “지자체의 기술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과 같다”라며, “시민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항의가 들어온다”라고 밝혔다.
이런 공개된 평가 체계는 지자체 CIO 업무에 기본적으로 포함돼 있다. 머치히야는 “매주 화요일 시장과 시의회는 시민과 직접 만난다. 박수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반응도 각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실수는 곧바로 드러난다. 머치히야가 산타모니카에서 근무한 지 나흘째 되던 날, 크라우드스트라이크의 글로벌 장애로 도시 시스템이 멈췄다. 시스템 구조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 팀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머치히야는 “팀원들은 내 리더십 스타일도 몰랐지만, ‘무엇을 하면 되느냐’고 먼저 물었다”라고 회상했다. 민간 CIO에게 시스템 다운은 매출 손실이나 평판 훼손으로 이어지지만, 지자체 CIO에게는 응급 서비스 차질이나 시민 안전 위협으로 연결될 수 있다.
머치히야는 앞서 CIO로 일한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에서도 비슷한 교훈을 얻었다. 당시 세금 납부 과정의 비효율로 시민 불만이 커지자, 팀은 SaaS 방식의 솔루션을 개발했다. 이 솔루션은 이후 애리조나 전체 지자체의 40%로 확산됐다. 머치히야는 “성공의 진짜 기준은 채택률이나 수익이 아니라, 자영업자가 더 이상 시의 행정 절차에 허를 찔리지 않게 된 점이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시민을 직접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지자체 CIO는 소통 방식도 다르다. 머치히야는 “새 시스템이 곧바로 효과를 내지 못했을 때 불만을 쏟아내는 시민 앞에 직접 서야 했다”라며, “실시간으로 책임을 지는 자리다. 몇 달 뒤 분기 실적 발표가 아니라, 어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을 현장에서 듣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성장보다 거버넌스가 우선
조지아주 샌디스프링스는 부서 간 소통 문제로 업무 추진에 어려움을 겪자, 데이터 전략·분석·AI 통합 책임자로 키스 맥멜런을 영입했다. 맥멀런은 화려한 파일럿 프로젝트보다 먼저 데이터 거버넌스를 손봤는데, “거버넌스 없이 구조도 없이 AI를 도입하면, 작은 문제들이 쌓여 조직이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부임 몇 주 만에 맥멀런은 데이터·AI 운영위원회 헌장을 만들고 기술 실무 그룹을 구성했다. 이들은 매월 회의를 열어 업무 요청을 공식화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목소리 큰 사람이 주도하는 의사결정을 막았다.
맥멜런은 데이터 전략 수립 초기부터 윤리 원칙을 명시했다. 샌디스프링스는 독립적인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를 채택하고, 산호세 정부의 AI 연합체를 참고해 AI 사고 대응 계획도 마련했다. 특히 위험이 새로 발견되면 즉각 대응했다. 오픈AI 도구로 도시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커넥터 관련 보고서를 받은 직후, 맥멀런은 IT 디렉터와 함께 AI 정책을 개정하고, 경영진 승인을 당일에 받아 전 직원에게 즉시 적용했다. 맥멜런은 “윤리는 사후 고려 대상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할 항목”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준비 태도는 다른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샌디스프링스는 기술적으로는 가능했지만,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챗봇 도입을 보류했다. AI가 편향된 답변이나 불쾌한 표현을 할 경우 평판에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대인 인구 비중이 높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작은 실수 하나가 가져올 피해가 효율성보다 훨씬 크다고 판단했다. 대신 자동화와 AI는 내부에서 먼저 시험하며, 모든 결과는 사람이 검증하도록 했다. 맥멜런은 “현 단계에서는 반드시 사람이 개입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샌디스프링스는 거버넌스를 단순한 절차가 아닌 혁신의 토대로 보고 있다. 명확한 프레임워크, 윤리적 기준, 구조화된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단순히 작동하는 수준을 넘어 시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디지털 서비스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시민 참여형 코크리에이션
노르웨이 스타방에르에서 스마트시티 국장을 지낸 군나르 에드윈 크로퍼드는 시민과의 코크리에이션(Co-creation)을 핵심 원칙으로 삼았다. 크로퍼드는 “초기에는 기술 중심의 하향식 파일럿을 시도했지만, 시민과 언론이 반발했다. 시민의 수요를 기반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라고 밝혔다.
스타방에르는 주민이 지역 사업을 투표로 결정할 수 있는 디시딤(Decidim) 같은 참여형 예산 플랫폼을 실험했다. 정치인은 권한이 약화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초기 단계부터 시민을 참여시키는 것이 신뢰 형성에 결정적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대중교통 정류장 재설계였다. 기존에는 외주업체에 디자인을 전적으로 맡겼지만, 스타방에르는 실제 통근자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물었다. 놀랍게도 화려한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조명이 밝고 바람을 막아주는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답변이 나왔다. 시민과 공동으로 설계한 이 시범 사업은 규모는 작았지만 공공의 지지를 얻었다.
크로퍼드는 이 점에서 민간의 혁신 연구소와 지자체의 차이를 강조했다. “민간 기업은 조용히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목적 없는 기술 도입은 불가능하다”라며, “시민은 또 다른 앱이 아니라, 의미 있고 단순한 서비스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크로퍼드는 이를 ‘따뜻한 스마트’라고 표현하며, 스마트시티를 기술 전시장이 아닌 포용의 플랫폼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은 기능뿐 아니라 사회적 정당성도 검증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과의 코크리에이션은 스타방에르가 새로운 데이터 사업을 추진할 때 불신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됐다. 크로퍼드는 교통량과 차량 종류(자전거 포함)를 식별하는 첨단 카운터와 학교·유치원 주변 차량 속도를 측정하는 센서를 시험했다. 크로퍼드는 “프라이버시와 GDPR에 대한 시민의 우려 때문에 긴밀한 소통이 필수였다”고 설명했다.
보다 급진적인 프로젝트도 있었다. 시민이 스포츠워치의 위치 추적 기능을 활용해 자신의 동네를 직접 매핑하는 방식이었다. 크로퍼드는 “참여자가 많았지만 GDPR과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에 시민이 언제든 참여를 철회하고 데이터를 삭제할 수 있도록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해야 했다”고 말했다.
크로퍼드는 “이런 방식은 시민이 프로젝트를 소유한다고 느끼게 만들어 준다”라며, “코크리에이션은 유행어가 아니라 기술이 채택되느냐 거부되느냐를 가르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목적 있는 ROI
민간 기업은 경쟁 우위를 위해 기술 트렌드를 좇지만, 도시의 CIO는 기술이 시민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호주 시드니의 최고기술·디지털서비스 책임자 톰 가오는 과대광고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가오는 “요즘 모두가 AI를 좇는 이유는 업계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작 서비스 전 과정을 디지털화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가오에게 *ROI는 시드니가 혁신적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 업무 시간을 줄이고 시민의 불만을 줄이며 사용하기 쉬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3D 가상 공간 투어다. 이 기능 도입 전에는 시민이 커뮤니티 홀이나 결혼식장을 예약하기 위해 직접 방문해 몇 시간씩 소요됐지만, 지금은 80개 장소를 온라인에서 상세히 확인할 수 있어 시민과 직원 모두 수천 시간의 시간을 아낄 수 있다.
같은 원칙은 85개 서비스를 디지털화한 ‘시티 커넥트(City Connect)’ 플랫폼에도 적용됐다. 시민은 언제든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고, 이메일과 문자로 진행 상황을 안내받는다. 가오는 “이런 것이 진짜 ROI다.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시민이 불필요한 수고 없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느냐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AI 도입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한다. 가오는 분석 결과 시민 문의 대부분이 이미 기존 디지털 서비스로 해결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고비용 챗봇 도입을 포기했다. 대신 긴 설명 대신 직관적인 아이콘을 활용해 쓰레기 수거 요청 과정을 단순화하는 등, 시민의 인지 부담을 줄이는 자동화에 집중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AI가 직원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을 때만 유용하다고 판단한다. 예를 들어 검색보다 더 빠르게 정보를 찾을 수 있는 AI 어시스턴트 봇은 도입했다.
가오는 의미 있는 ROI는 시간 절약, 명확성 향상, 신뢰 확보로 측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AI는 도구일 뿐”이라며,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무엇이며, 그로 인해 혜택을 받는 사람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공공성과 보람에서 오는 동기
민간 CIO는 자신의 역할을 경영진 승진이나 이사회 진출을 위한 경로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지자체 CIO는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데서 직업적 보람을 찾는다.
머치히야는 이 점을 무대에 중독되는 것에 비유한다. 시민 삶에 실질적 영향을 주는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도입하면 즉각적인 찬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크로퍼드는 시민이 직접 자신이 사는 지역을 설계하는 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한 일이 가장 큰 만족이었다고 말했다. 맥멜런은 앞으로도 지역 사회에 영향을 줄 시스템에 윤리를 내재화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가오는 디지털화가 시민을 관료주의에서 해방시키고 시청 직원의 반복 업무를 줄여주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 차이는 단지 철학적 차원이 아니다. 감정적인 차이기도 하다. 가오는 시드니의 한 고령 여성이 집에서 ‘시티 커넥트(City Connect)’ 포털로 허가증을 갱신하는 장면을 기억한다. 가오는 “그 여성은 버스를 세 번 타야 할 일이 줄었다고 했다”라며, “재무제표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런 ROI야말로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강조했다.
크로퍼드는 스타방에르의 참여형 예산 플랫폼이 처음으로 동네 놀이터 조성에 예산을 배정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크로퍼드는 “아이들이 직접 그리고 싶은 놀이터 그림을 들고 시청을 찾았을 때, 우리는 단지 플랫폼을 개발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바꾼 거라는 사실이 와 닿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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